“미래를 바꿀 것”
노벨 화학상 수상자 앨런 히거 인터뷰
“각종 전자제품 충전시스템으로 상용화 할 계획
정보교환과 기술교환 통한 기술발전이 우선 목표”
200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의 앨런 히거(Alan J. Heeger·69) 교수는 지난 7월 제자인 광주과학기술원 이광희(李光熙·47·신소재공학과) 교수와 함께 상용화에 근접한 차세대 플라스틱(유기)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태양전지는 전기가 흐르는 플라스틱의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기존 실리콘 결정 태양전지와 달리 쉽게 휘어지고 가벼워 각종 전자제품의 휴대용 전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히거 교수는 이르면 내년쯤 첫 상용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 코오롱과 2010년까지 휘어지는 유기태양전지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로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가 바라보는 태양에너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고유가와 환경 문제로 태양광 발전이 주목 받고 있다. 실용화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1954년 실리콘 태양전지가 처음 개발됐다. 하지만 실리콘 태양전지는 지난 50년 동안 가격이 꾸준히 떨어졌으나 지금도 매우 비싸다. 반면 유기 태양전지는 얇은 플라스틱에 인쇄방식으로 발전재료를 입히는 것이라 제조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재료도 저렴하다. 우리 목표는 화석연료보다 발전 단가를 낮추는 것이다. 이미 시험생산을 시작했다. 내년쯤 초기제품이 나올 것이다. 일단 대형 발전용보다는 휴대용 가전제품의 충전시스템으로 상용화할 계획이다. 수년 내 대량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며 대형 발전용도 2010~2011년까지 만들 계획이다.”
―유기태양전지가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근본 개념은 같다. 그러나 재료가 다르다. 무기(無幾) 태양전지는 실리콘이나 갈륨비소 같은 무기물을 사용하지만, 유기태양전지는 반도체성 고분자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고분자는 스스로 조립되는 성질이 있어 만들기가 간단하다. 또 실리콘 제조공정은 온도가 높아야 하지만 고분자는 물에 잘 녹고 낮은 온도에서 반응을 하기 때문에 책 찍어내듯 쉽게 인쇄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유기태양전지가 아직까지 실용화되지 못했는가.
“제조기술은 15년 전에 처음 개발됐다. 그러나 근본 원리를 이해하고 적당한 재료를 만들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실리콘 태양전지가 개발되는데 50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르다.”
―사람들은 태양 전지로 가정이나 공장에서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데 관심이 많다. 왜 발전(發電)보다 가전제품 충전 쪽을 먼저 상용화하는가.
“발전이 태양전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유기 태양전지는 가볍고 잘 휘는 장점이 있어 전자제품에 적합하다.”
―상용화를 위해 기업들과 협력을 하고 있는가.
“미국에 상용화를 위한 기업을 세웠다. 먼저 군사용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예를 들어 텐트나 군복에 입히는 태양전지다. 이광희 교수와 함께 발표한 태양전지는 오늘처럼 흐린 날에도 전자시계를 작동시킬 수 있다. 태양전지는 다양한 가전제품에 적용이 가능하지만 초기에는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제품에 적용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연구를 진행하는가.
“영광스럽게도 내 이름을 딴 연구소(광주과기원 히거 신소재연구센터) 소장이 됐다. 광주과기원의 학생들의 수준은 매우 높다. 지난 7월 발표한 태양전지도 한 대학원생이 이 분야에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성과를 낸 것이다.”
―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작은 전지는 실험실에서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상용화를 위해선 대규모 생산공정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재료와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빛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바뀌는 효율이 상용화 단계인 7%에 올라섰지만, 수년 내 실리콘 태양전지와 대등한 15%까지 높일 계획이다.”
―기초과학을 연구한 학자인데 어떻게 기술의 상용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사회가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지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처음 유기물질 간의 초고속 전하(전기입자) 이동 원리를 연구할 때는 유기 태양전지를 만들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발견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기술을 개발하게 됐다.”
―기술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경쟁이 아니라 과학적 협동 단계다. 많은 연구팀에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서로 돕고 있다. 정보교환과 기술교환을 통해 기술자체를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물론 박막형 실리콘 태양전지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태양전지와 경쟁은 있다. 유기태양전지도 고분자를 사용하지 않는 종류도 있다. 가격 경쟁도 있다.”
―가전제품 전원으로 기존 배터리나 수소연료전지 같은 차세대 에너지원(源)에 비해 태양전지가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기존 배터리는 다른 전원으로부터 전기를 받아 충전해야 하나 태양전지는 그 자체가 전원이다. 미래에는 차고 지붕에 태양전지를 설치해 낮에 전기를 만들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수소연료전지는 에너지 저장매체이다. 에너지원은 수소다. 태양전지로 수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바이오 연료도 차세대 대체에너지로 각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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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히거 교수 |
“바이오 연료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바이오 연료는 석탄이나 석유처럼 여전히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발생시키므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 또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의 숲을 없애고 바이오 연료를 만들 사탕수수 숲을 만들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이산화탄소 흡수원을 없애는 바이오 연료는 문제가 있다.”
―태양광 발전을 하려면 미국 사막처럼 햇빛이 많은 넓은 지역을 태양전지로 덮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빌딩이나 주택에 각각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는 분산형 발전이 가능하다. 비 오는 날에도 태양광은 있다. 독일은 항상 해가 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21세기에 전력수요의 70%를 태양발전으로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고층 빌딩은 건물 크기에 비해 전지를 설치할 지붕이 좁지 않나.
“건물 벽면을 태양전지로 덮으면 된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는 햇빛이 수직으로 와야 하지만 유기태양전지는 햇빛을 잘 반사시키지 않아 입사각이 작아도 된다. 따라서 벽면에 전지를 설치해도 발전을 할 수 있다. 또 유기태양전지는 투명한 필름형태로 만들 수 있어 창문에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석유나 석탄, 수소는 누군가 생산한 것을 사지만 햇빛은 누구나 공짜로 사용해야 하지 않는가. 태양발전으로 만든 전기는 누구나 공유하는 게 옳지 않은가.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미국이나 한국은 이미 전력 공급망을 갖고 있다. 각각의 가정이나 빌딩이 태양광 발전을 하고 남은 전기를 중앙 전력회사에 팔면 결국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아프리카나 인도처럼 전력망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곳에서는 중국에서 전화선을 거치지 않고 무선 인터넷으로 간 것처럼 아예 처음부터 모든 발전을 태양전지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오롱과 협력하기로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협력과 경쟁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코오롱은 과거 고분자의 분자 구조를 바꿔 탄력 있는 섬유를 만든 것처럼, 기계적 특성을 바꾸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유기태양전지의 새로운 전자특성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코오롱의 다른 주력분야인 건축업의 경험을 살려 유기 태양전지를 타일이나 지붕에 내장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양전지를 가방이나 의류에 결합하는 데도 패션사업을 해본 코오롱이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앨런 히거 교수는
미국 아이오와주 출신으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B)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 물리학부 교수(1962~82년)를 거쳐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UCSB) 물리학부 교수(1982년~현재)로 재직 중이다. 1977년 전기가 통하는 고분자를 발견, 플라스틱(유기) 전자공학분야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 받아 앨런 맥더미드, 시라카와 히데키 박사와 함께 200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플라스틱은 일정한 구조의 분자가 반복돼 있는 고분자이다. 히거 교수는 흔한 고분자의 하나인 폴리아세틸렌 박막에 요오드를 입히면 전기가 흐르는 능력이 수십억 배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노벨상위원회는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발명과 견줄 만한 발견”이라며 “아마 노벨이 살아 있었다면 매우 기뻐했을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응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 광주과학기술원이 그의 이름을 따 만든 ‘히거 신소재 연구센터’ 소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