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부러워하는 과학자] <6> 서은경 전북대 교수 → 이종람 포스텍 교수
태양전지·LED전등 설치 봉사 / 필리핀 등 오지마을에 빛 선물
이영희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말한 서은경 전북대 반도체과학기술학과 교수가 이번엔 실천하는 과학자라며 이종람 포스텍 신소재공학부 교수를 소개한다.
연구를 하다 보면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 지 먼저 생각하기보다 좋은 평가를 받거나 경쟁 그룹보다 앞서나가려고,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 연구한다는 얘기다. 나도 그럴 때가 있어서인지 이종람(54) 포스텍 신소재공학부 교수를 보면 가끔 부끄럽다.
이 교수는 지난해부터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오지 봉사를 떠난다. 여름과 겨울방학에 1주일씩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가서 태양전지와 발광다이오드(LED) 전등을 설치해 주고 온다. 벌써 필리핀과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LED 전등과 태양전지 구입 비용은 십시일반 모아서 충당한다.
고생도 여러 번 했단다. 필리핀에선 카누를 타고 호수를 건너던 중 폭풍우를 만났다. 전등을 설치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쪽배는 금세 뒤집어질 것마냥 휘청거리고 번개는 카누를 향해 위협적으로 치는데, 이 교수는 호수를 건너는 그 40여분의 시간이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소나기로 개울가의 물이 삽시간에 불었을 땐 급류에 쓸려나가지 않도록 서로 손을 잡고 겨우 건넌 적도 있다.
참 이상한 건 그런 생고생을 했는데도 오지 봉사를 다시 가고 싶어 하는 학생이 많다는 거다. 이 교수는 자신이 연구실에서 하던 일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느꼈기 때문일 거라고 귀띔해준 적이 있다. 그의 주 연구 분야는 LED 전등과 태양전지 개발이다.
이 교수는 연구 결과가 자신만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주위를 보지 못하고 독선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연구실에 있는 18명의 학생은 적어도 남을 생각하는 과학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봉사활동을 기획했다고 했다.
연구에 지장을 준다? 반만 맞는 말이란다. 오지 봉사를 떠난 1주일간은 연구를 못하지만 오히려 능률은 쑥쑥 오른다고 했다. 교수가 하라니까 한다는 식이 아니라 왜 연구를 해야 하는지 연구원들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연구실엔 언젠가부터 하나의 꿈이 생겼단다. 자체 개발한 LED 전등과 태양전지를 가져가자는 공통의 목표 말이다. 지금은 시중에서 구입한 제품을 구입해 설치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하나가 없어도 큰 불편함을 겪지 않지만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이들은 하나만 바뀌어도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학의 목표도 결국엔 인류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것일 텐데. 아직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거나 부족한 곳에서 사는 사람이 20억명에 달한다.
과학자는 연구실을 떠나선 안 되지만 반드시 연구실에만 머물 필요가 없다는 사실. 지난해 전북대에서 열렸던 반도체 세미나에서 이 교수의 오지 봉사 얘기를 듣고서야 난 그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골방 속의 과학자'가 아니라 남을 위해 실천하는 이 교수의 모습은 내게도 큰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