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형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황창규 단장이 이끄는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 부품소재 MD로 자리를 옮긴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이 곳에서 그는 국가 부품소재와 관련된 R&D 전략을 수립하고, 어느 곳에 어떤 방향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있다. 국가 R&D를 좌우하는 중책을 맡아 부담감과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지만, 현재 진행되는 모든 일들이 미래의 신산업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핀에 대한 그의 진단은 '국가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홍 교수는 그래핀이라는 꿈의 소재를 통해 세계 전체 산업의 방향이 변화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좋은 연구 결과는 생활을 편하게 만들고, 미래를 열어야 한다"며 "그래핀은 현존하는 소재 중 가장 월등한 소재다. 모든 것들의 특성을 훨씬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모든 산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재는 산업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반도체 시대를 연 것은 다름아닌 실리콘이라는 소재가 값싸게 공급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핀 역시 저렴하게 만들어지게 되면 그야말로 산업의 혁명 아닌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그래핀은 지난 2004년 처음 연필심에서 분리되어 물성이 확인된지 7년 만에 세계 석학들 사이에서 21세기 산업을 변화시킬 핵심 소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에너지, 복합 소재 등 그래핀이 사용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홍 MD는 "그래핀을 이용해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면 기존 실리콘이 갖는 정보처리 속도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다"며 "터치패널, 자동차 경량소재, 이차전지 등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 LED 조명 역시 중요한 산업군으로 나뉘어지고 있는데, 그래핀을 사용하면 기존보다 방열 특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세계적인 기술 경쟁이 시작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응용 경쟁력 면에서는 한국이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그래핀이 응용될 수 있는 수요 산업에서 이미 세계 최상위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정보통신산업, 에너지산업, 주력산업 분야 등 60여 개 기업이 정부 상용화 연구개발(R&D) 투자를 선도한다며 2,300억원 규모 매칭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나서는 등 산업계 R&D 투자의지도 다른 나라보다 높다"고 강조했다.
또한 홍 MD는 "현재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에서 대형 국가 R&D 사업을 기획 중에 있다. 미래에 중요한 기술을 선점하자는 뜻이다"며 "지난해 이미 그래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획했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제외됐었다. 현재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그래핀 소재 부품 상용화 기술 개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올해 예산이 확보되면 내년부터 연구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홍 MD에 따르면 이번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게 되면 내년부터 6년 동안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게 된다. 6년 동안 총 사업비가 2106억원이 투입되는데, 이 중 국가 지원이 834억원이고 민간 지원이 1272억원 정도다. 6년 동안 산학연이 협력하여 그래핀 소재 부품 상용화를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향후 6년 내에 본 사업에서 개발하는 그래핀 소재 및 부품들이 상용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15년이 되면 그래핀 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될 것이다"며 "2020년부터 2030년까지는 급속한 성장 단계를 거쳐서, 2030년 경에는 약 6천억 달러의 큰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본 사업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기술을 선점하고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서둘러야 한다. 빨리 안 하면 뒤쳐진다"
응용 기술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선두권을 달리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의 기술개발 속도가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면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에서는 이미 그래핀 관련 정부 R&D 투자 전략을 짜놓은 상태다. 정부 투자를 통해 기업의 개발 리스크를 줄이면서, 기업의 매칭 펀드를 통해 전체 R&D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홍 MD는 "응용 분야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맡을 컨트롤타워도 필수다. 어떤 제품을 전략적으로 개발할 것인지, 어떤 분야에서 어느 시기에 상용화가 가능할지 등을 분석해서 기업 투자 리스크를 줄여줘야 한다"며 "정부는 소재뿐만 아니라 소재와 부품, 장비, 완제품을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지원전략을 수립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래핀 소재 연구가 상용화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 MD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 째는 바로 가격 문제다. 그는 "그래핀 소재 가격은 다른 소재에 비해 매우 비싸다. 글로벌 경쟁 여건 등을 감안하면 양산기술을 개발해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대폭 낮추는 작업이 향후 2~3년 안에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핀 응용부품 개발을 위해서는 새로운 공정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또한 기술에 대한 신뢰성이 입증돼야 한다. 홍 MD는 "그런데 아직 누구도 상용화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큰 상태다. 따라서 그래핀 분야 산·학·연 컨소시엄 사업단을 구성해 여기에서 나오는 원천기술연구 결과를 기업이 사업화하는 공동연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해 무역 규모 1조 달러 돌파, 2020년엔 2조 달러 달성해야
"지난 해에 우리나라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정부의 목표는 2020년 경에는 2조 달러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 소득 4만 불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무역 규모를 2배로 늘리려면 미래 성장 동력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그래핀이 미래 성장동력 산업의 한 축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하긴 했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국산화가 시급했던 부품 기술 분야는 그간 투자를 많이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소재 기술 분야는 아직 일본, 독일에 비해 뒤지고 있다. 그래서 정부 투자 방향을 2011년부터 향후 10년 동안 부품 중심의 R&D 지원에서 소재 중심의 R&D지원으로 변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원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소재 개발이 우선돼야 하며, 소재 강국으로 도약하게 되면 선진국 진입도 마냥 꿈만은 아니다.
홍 MD는 "현재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열심히 하고 계시며, 우수한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기초연구 측면에서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의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실용화와 상용화 측면에서는 산학연관이 협력하는 전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국가의 지원은 미래 지향적 리스크가 큰 연구개발에 투자를 리드해주는 것이다. 위험 부담이 큰 연구개발은 기업이 선뜻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홍 MD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리스크가 큰 분야를 투자하는 건 못하지만, 정부가 위험 가능성이 크고 미래 지향적인 분야에 선제 투자를 하게 되면 기업이 매칭을 가지고 들어오기는 쉽다"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정부가 투자 지원을 하는데는 전략을 잘 짜는 게 중요한데 "선진국의 경우 R&D를 진행하게 되면 전략을 기획하는 데 소요예산의 10% 정도를 쓰는데, 우리는 대체로 1%도 투자를 안 한다. 우리나라 역시 R&D 사업 예산의 10% 정도는 전략을 수립하는 데 써야 탄탄한 R&D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